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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설레/날적이 (일상)

노량진 오선지 위의 20대

 2011.02.16.




  젊은이들이 시끄러운 곳을 피해 들어간 허름한 숯불갈비집. 악보의 도돌이표처럼 소금구이와 소주 두어병을 시켜 놓고, 몇년 전 부터 반복되는 마디를 어김없이 이어갔다. 타버린 돼지고기가 분할된 살조각이 차갑게 굳어간다. 꼭 같은 차림의 친구가 중간에 한 자리를 더 차지하며 인사를 하고, 우리는 주인아저씨에게 소금구이 2인분과 소주 두어병을 더 주문했다.
  - 여기 소금 두 개랑 참이슬 두 병이요.
  그럴싸게 외쳤지만 악장의 마디는 되돌아가기만 할 뿐 도돌이표는 조금 더 뿌옇게 우리 셋을 감싸고 있었다. 머리가 반쯤 볏겨진 주인아저씨는 화장실 열쇠를 꼭 들고선 우리들을 지켜봤다. 메뉴판에 만이천원 차돌배기의 원산지는 국내산 육우였다.  
  - 일어나자.
  누군가 낮게 말을 꺼냈다. 명학환 의사소통을 기다렸다는듯이 주섬주섬 가방을 찾고 고기냄새 벤 외투를 찾는다. 그 짧은 마디에서 우리 셋은 계산대 앞으로 향하는 최대한 느린 장조와 가장빠른 장조 사이에서 몽환적인 악장을 형성하게 된다. 반쯤 열린 지갑 너머에서 '띠디딕띠디딕' 계산되는 악곡의 마무리는 언제들어도 아름다운 소리다.
  음표의 높낮이에 따라 10시를 넘기지 못한 시침바늘은 근처 호프집으로 우리를 모았다. 우리보다 더 비루해보이는 여자 종원원이 메뉴판을 던지듯이 건내고 간다. 마른 김 몇 장과 뻥튀기 한사발이 놓이고서야 메뉴판을 펼쳤다. 메뉴판의 재질이 몇 년 전 선사받았던 졸업장의 그것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 아무거나
  한 바퀴의 마디를 되풀이하고 노란 맥주와 노란 안주가 우리 가운데 놓여졌다. 각자 500cc만큼의 배급을 앞에 두고 빨간 고추장이거나 빨간 케첩이거나 모를 것을 몇 번 찍었다. 딱딱하거나 눅눅한 감자튀김 몇 개를 찍어 먹었다. 벽면을 장식한 연인들은 에펠탑 앞에서 세느강 앞에서 포옹하거나 진한 키스를 즐기고 있었다. 정확히 그 곳이 파리였는지 뉴욕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곳과는 다른 곳임에 저들의 키스와 포옹이 여기까지 인화되어 벽에 걸리었다.
  아주 잠시 내가 좋아하는 젊은 여성 국회의원의 이름을 말하고, 아주 잠시 요새 즐겨하는 트위터의 친구들을 말했다. 의원이 생각하는 세상과 트위터가 변화시키는 세상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못했지만 적어도 우리는 세상에 아는척 정도는 필요했다. 노란 맥주를 홀짝이는 만큼씩 검색어를 떠올리며 취해갔다. 취했다. 반복되었던 선율도 차츰 누그러지고 있었다. 취했다. 취한다.
  - 일어날까?
  일부러 박자에 맞춰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갔다. 멀쩡해 보일 필요가 있었고 그 곳을 지나는 많은 친구들이 그렇게 멀쩡해 보였다. 그렇게 함께 불빛지난 노량진 거리를 떠난다. 선배는 1호선 급행열차를, 나를 형이라 부르는 동기는 빨간버스를, 그리고 나는 화장실에 갔다. 1호선 노량진역, 민자역사를 그려놓은 현수막이 오늘 아침 학교에서 보았던 등록금 인상 현수막과 같아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화장실은 저마다 등을 돌리고 벽을 바라보았다. 인천행 급행 플랫폼을 지난다. 선배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 지금 소요산, 소요산행 마지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소요산, 그래도 매번 소용산행 전동차에 몸을 실는다. 두꺼운 안경테와 질끈 머리를 묶은 여자애와 힐끔거리며 두 자리를 동시에 앉았다. 안경 뒤로 내 몸에 베인 고기냄새를 맡았을까 깨알같이 하루를 정리한 익숙한 필기노트를 팔락이다 곧 조그만 한자 암기책을 꺼내놓고 고개을 든다. 마주보이는 창으로 서로의 얼굴이 보일것만 같다. 밖은 어두웠고 그만큼 서로의 얼굴은 잘 보였다. 불편한 두 다리와 두 어깨를 움츠려도 좁다. 쾌쾌한 시트 자리에 앉아 덜컹거리며 두 귀에 이어폰을 꼽고 아무것도 틀지 않았다. 들려오던 노래는 나도모르는 사이 끝나 있었다. 전동차 안의 작은 소리들이 이어폰을 타고 내 귀에 들어온다. 붉어지고 있다. 몇 시간 전 딱딱하게 식어가던 돼지고기 조각이 역하게 올라온다. 전동차가 지하로 들어서자 나는 자리를 일어나 문칸에 기대어 섰다.
  - 당신은 부르주아야.
  무릎팍 도사에서 아버지에게 외쳤다는 대학생 공지영이 겹쳐 보였다. 나도 그 선배에게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부르주아라고. 공산당선언을 몇 장 읽고선 학교의 교사는 혁명인자가 될 수 없다고 몇 시간을 떠들었던 것 같다. 주머니가 가볍다는 것이 무기가 될 수 있었던 시간이 잠깐 있었던 것 같다.
  나와는 상관없이 동쪽에는 폭설이 내리고 서쪽에서는 광장에 시민이 모였다. 북쪽에는 사람들이 굶어죽었으나 내 친구들은 남쪽으로 일자리를 찾아 혹은 선택되어 갔다. 나는 밤이 더 어둡기 전에 종로에서 내렸다. 음표 같은 사람들이 시커먼 대가리를 하고선 움직였다. 음자리표같이 서있다보니 오선지의 풍경이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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