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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설레/날적이 (일상)

중랑구 지붕 세상 우리 동네

 2010.03.16.


3월달부터 동네 구립 독서실에서 책을 볼 때가 많아졌다. 텅텅빈 독서실 내 자리가 되어버린 창가 쪽에 앉아 있노라면 모난 창틀 넘어로 북한산과 도봉산 자락의 모습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가깝게는 상봉동과 망우동이 '동북권 중심도시'라는 낙인을 찍힌 채 아슬아슬한 고층건물의 뼈대가 어색하게 삐죽 솓아 있는 모습 빼곤 그뒤로 부끄럽게 솟아있는 봉화산과 저 멀리 도봉산 자락까지 하염없이 낮은 붉은벽돌들과 좁은 골목들의 '지붕세상'이다. '저 골목 사이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걷고 땀흘리며 손을 잡으며 살아갈까'

대부분의 이들이 일하러 배우러 혹은 누군가를 만나거나 어딘가를 향하는 시간이 이미 두어시간 지난 늦은 아침을 맞이하는 지붕세상 이 동네는 요 몇일 흐리고 축축한 날씨덕에 도봉상과 북한산 자락의 모양새가 꼭 어미개가 새끼를 품고 쌔근 잠들어 있는 모습이다.

전망 좋은 남산 언저리 모교의 도서관 옥상에서나 혹은 남산에서, 아니면 부암동이나 성북동 어딘가의 서울 언저리에서 보던 서울의 야경은 하늘의 모든 별이 지상으로 내려 온 모습이었다. '반짝이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엔 다소 낯뜨거운 네온사인의 현란한 불빛들도 사실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구불구불 남산을 오르는 노란색 순환버스를 타며 왼편으로 펼쳐지는 용산일대의 모습도 그러하고 성북동 성곽길을 따라 부암동에서 내려보던 혜화동 일대의 모습도 그러했으며 학교 도서관 옥상에서 묵묵히 바라보이는 종로와 명동의 불빛들을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요 몇 일 서울의 가장자리에서 중심부를 보는 것 말고도 서울의 못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산다는 이 동네를 바라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못 산다'에 대한 의미는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잘 산다'라고 듣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들은 잘 사는 일이 집이 넓거나 고급 승용차 따위를 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른아침 썰물처럼 항시 에스칼레이터가 고장나는 지하철 구덩이로, 새마을 운동의 기수같은 버스정류장으로 몰리는 어느 잘나가는 동네가 아니라, 옥탑방에서 눈을 떠 아래층 구멍가게며 문방구의 셔터를 올리는 곳, 골목골목마다 '원미동 사람들(양귀자 소설)의 김포수퍼와 형제수퍼며 지물포, 쌀상회 그리고 써니전자의 입담들이 오고가는 곳, 누구는 새벽까지 삼겹살을 굽고, 수백개의 우편물 박스를 포장하고서 아침 생방송과 함께 여전히 이불 속에 있는 곳, 누구나 한 범쯤은 밤늦게까지 소리죽여 울어 본 적 있을 것 같은 곳, 늦은 아침까지 어미개가 새끼들을 품듯이 아직 여유를 부리는 서울의 가장자리 이 곳이다.

부암동이나 남산에서 바라보이는 서울의 별빛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밤마다 피곤한 불을 밝혀 무수한 욕망의 조명이 되어주겠지만, 이른 아침 누구보다 일찍 잠에서 깨어 듬성듬성 기지캐를 켜는 빌딩들마저 못마땅한듯 별빛도 잠을 자는 이 곳은, 지금 모난 창틀 너머로 보이는 지붕세상 어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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