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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설레/날적이 (일상)

사람의 'ㅁ'이 닳고닳아

 2010.06.16.


 

  어느 땐가 교양강좌에서 들은 말인듯 하다. "사람의 'ㅁ'이 닳고닳아 'ㅇ'이 되어 사랑이 됩니다." 다시말해 '사람'과 '사람'이 부딪혀 우리의 모난 부분들이 닳아없어지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문자의 모양을 이용한 재치있는 이야기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매일같이 사용하는 언어를 조금만 관심있게 알고나면 조금은 더 그럴듯한 기분으로 사람과 사랑을 장난질해도 될 수 있을 것 같다.

 

  애초에 언어의 시작은 많은 부분 상형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이야기의 짜임이 문학이라면, 그보다 더 작은 문장은 문자라는 기호의 구성으로 이루어진다. 문학이 삶을 형상화한다면, 문자는 이미 알게모르게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상형하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세종대왕이 변소에서 볼 일을 보다가 창호지문의 대나무결을 보고 훈민정음 문자를 생각해 냈다고도 하지만, 쉽게 보듯이 산의 모양을 본 뜬 '山', 물의 흐름을 나타낸 '川',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쉬는 '休' 등의 한자와는 달리 우리 문자는 구성적으로 상형화 되어있다. 각각 '하늘', '땅', '사람'을 의미하는 'ㆍ', 'ㅡ', 'ㅣ' 등의 모음도 그러하고, 발음기관인 입술, 목구멍, 치아, 혀의 모양을 나타내는 'ㅁ', 'ㅇ', 'ㅅ', 'ㄴ', 'ㄱ' 등의 자음도 그러하다. 각 음소(자음과 모음)들로 만들어지는 글자 하나 하나는 따라서 완성된 의미와 획의 꺽임과 이어짐 사이에 어떤 의미를 갖을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수많은 대화와 소통 속에서 작지만 수많은 의미들을 알게모르게 전달하는 셈이다.

 

  끊임없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고집스런 직선이나  언제나 한쪽의 방향으로 몸을 기울여야 하는 허리아픈 곡선이나 누가 더 잘난 녀석일리는 없지만, 내 마음에 의하면 여전히 직선과 곡선에 우리는 알게모르게 조금씩 각자의 의미를 두어 바라본다. 얼마전 네모난 액자와 동그란 시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사진을 담아두는 액자는 아무래도 네모난 틀에 들어있어야 그럴듯하고, 밤새 쉼없이 째깍거리며 돌아갈 시계는 역시 동그란 틀의 시계가 그럴듯하다는 생각이었다. 비록 정지된 시간이지만 환하게 웃고있을 지난 추억들을 담아 둘 틀은 갸우뚱 거리거나 굴러가지 않게 하고싶은 나의 욕심 때문일까. 하루종일 고단한 시계바늘의 노동을 보며 하루의 중앙에서 조금의 여백도 양보하지 못하는 나의 좁은 마음 때문일까. 하여튼 존재그대로의 선(線)을 무시하고 나는 형(形)을 좇아 내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 셈이다. 네모는 우직하지만 심심하며, 동그라미는 편안하지만 산만한 셈이다. 하긴 그래서그런지 사람은 우직하지만 외롭고 사랑은 편안하지만 불안하기 짝이없다.

 

  어느날, 사람과 사랑이 단지 'ㅁ'과 'ㅇ'이라는 직선과 곡선의 작은 차이일 뿐이라는 사실을 눈치챘더라면 난, 사람을 받치고 있는 저 작은 네모 속에 수많은 것들이 들어차야 겠구나라며 텅빈 가슴을 보듬어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저 고집스런 네모 안에는 수없이 닳고닳은 동그라미들이, 작은 상처와 사랑들이 가득 들어차 있어 사람은 외롭지 않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어른이 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람'이 네모난 상자처럼 그릇과 같은 것이라면, 저 안에 얼마만큼의 열매같은 삶과 가슴이 있어야 살아 갈 수 있을까 알지 못한다. 붉은 열매가 동글골글 기어이 매달려 나를 채워 갈지라도 다만 'ㅁ'와 'ㅇ'의 작은 차이 속에서 여전히 허기를 느끼는 아이를 본다. 그렇다면 'ㅁ'와 'ㅇ'를 형(形)이라는 채움과 비움의 관계로 보기 전에 '직선'과 '곡선'의 선(線)의 궤적을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가득찬 서정보다는 끊임없는 서사가 더욱 아름다울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닳는 발자국의 시간이 없기 전에는 사랑도 붉은 열매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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