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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니/유리창 (시선/생각)

오늘은 메이데이. 투쟁하는 노동절입니다.


120주년 노동자의 날 포스터

   2002년 내가 새내기일 때. 어느 날 밥 잘 사주던 선배가 노래공연 보러 가자고 했어요. 파릇파릇한 봄 날 가벼운 옷차림으로 그래서 어둑해질 쯤 갔던 곳이 안암동의 대학교 였어요. 그 학교의 학생회관 앞에선 시뻘건 천막 주점들이 바글바글하고 시커먼 옷 입은 사람들이 무서운 춤을 추고 있었드랬죠. 대회라곤 체육대회 밖에 모르던 나로썬 밤새 모 그리 'OO대회'가 많은 지 오들오들 밤을 지샜 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이것이 내가 처음 가 본 '세계 노동자의 날' 노동절이었요.

 

   그 후로 8년이 지났고 어느새 나는 학생아닌 학생 혹은 노동자아닌 노동자가 되었고, 오늘은 또다시 120주년 노동절이에요. 120년 전 미국에선 다이아몬드로 이빨을 해넣고 1백달러 지폐로 담배를 말아피우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 자신의 갓난아이에게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도록 마약성분을 먹이곤 공장으로 일을 나가곤 했지요. '임금노예'였던 그들은 8시간 노동제를 주장하다 경찰의 총탄에 죽거나 감옥으로 끌려갔지만 결국 자본가들의 음모로 들어난 이들의 희생은 만국의 노동자들이 기념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세계 노동자의 날'이 되었지요.

 


   우리나라의 노동절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어요. 일제시대의 노동자들은 일제순경의 칼에, 해방 후에는 반공과 산업역군이라는 폭력에 희생 당했지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산업화라는 시간 뒤에는 공순이, 공돌이라는 억압과 굴레가 있었고 전태일과 같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저항이 있었지요. 그리고 2010년 지금 저들은 잘못된 노사문화가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 뜨린다 앙앙 되지만, 정작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이야기는 한 번도 하지 않아요. 열악한 환경과 산재의 위험 속에서 잔업과 특근을 마다하지 않아야 그나마 '귀족노동자'로 불리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절대다수인 특수노동자, 계약직노동자, 하청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느새 우리 20대들도 실업이라는 누군가의 의도 속에 불안정 노동의 최전선에 몰려버렸지요.

 


   2010년 4월. 천안함 사고가 있었고, 6월에는 보궐선거가 있어요.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애도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하겠지만 추모와 애도의 대상이 ‘국가를 위해 희생한’ 희생자인지 ‘국가에 의해 희생당한’ 희생자인지의 차이는 우리 자신이 선택해야겠죠.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선거가 결국 저들처럼 단지 ‘노동자 서민에게 어필하려는’ 것인지 ‘노동자 서민과 손잡는’것인지도 우리 자신이 선택해야겠죠. 과연 우리 자신이 노동자인가 아닌가하는 고민은 ‘한 달여’의 추모기간과 선거기간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고민처럼 무의미 할지도 몰라요. 그래서 어쩌면 추모와 선거는 연장선안에 있는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내가 누구에게 추모하고 누구에게 투표하는 것 만큼, 내가 누구이고 나는 저들에게 누구인가가 그만큼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그것을 알리는 것은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내 주변의 삶을 돌아보면 알 수 있겠죠. 그것은 한 달이 아닌 1년, 10년을 지켜가며 하는 일이에요.

 

사진 왼쪽부터 이랜드 노동자, 촛불 시민들, 쌍용자동차 노동자, 용산 철거민, 대학을 거부하는 학생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고민한만큼, 실천한만큼, 연대한만큼, 지지한만큼 사회와 나는 그만큼 더 힘들어 지더라구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세상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 순간에도 수많은 누군가는 나를 향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는 내 위치, 내 시선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죠. 지금 내가 보는 사회는 어떤가 생각하면. 참 조용해요. 그러다가 문득 ‘아차’하고 돌아봐요. 내 주변을 돌아봐요.

 

   오늘은 세계 노동자의 날, 노동절이에요. 여전히 누군가는 근로만을 강요하는 근로자의 날로 명칭하지만, 오늘은 노동하며 삶을 영위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며 억압에 저항하는 노동자의 날이에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그대가 잃을 것은 착취의 쇠사슬이요, 그대가 얻을 것은 전 세계니


[읽기 자료 : 메이데이의 역사와 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