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느낌이 아닐까. 수업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 있다. 아직 어느 교실에선 시끄러운 아이들의 소리가 드문드문 들린다. 나는 텅 빈 긴 복도를 따라 걷는다. 들어가야 하는 교실앞에서 잠시 쉼호흡을 하곤 앞문을 연다. -드르륵. 그 순간이다. 모든 아이들의 눈빛이 잠시 문 앞으로 쏠린다. 이 순간의 느낌은 언제 어느때고 문득문득 다시 살아나곤 했다.

 정규수업이 아닌 방과후 수업은 아쉽게도 이러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는 수업이 시작하기 30분 일찍 도착하여 교실을 둘러보았다. 교실은 어두웠다. 의자도 들어가지 않는 좁은 책상과 낙서 가득한 책상이 삐뚤삐뚤 줄 서있고, 오래된 다락방의 먼지처럼 칠판엔 분필가루가 소복히 내려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실망하였던 것은 컴퓨터와 영상 기기다. 교실마다 있는 컴퓨터와 프로젝터 빔은 관리가 되고 있지 않았다. 컴퓨터는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작동하지 않을 듯 하였고, 값비싼 프로젝터 빔의 연결단자는 방치되어 있었다. 담당 선생님께 프로젝터의 사용여부를 여쭤봤으나 알지 못했고, 교실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교실 난방을 어떻게 켜는지조차 알지 못하셨다. 다행히 중간에 기사님이 단자를 열어주셔서 가져간 내 노트북과 연결해볼 수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화면 막은 덜컥덜컥 무엇에 걸렸는지 내려오지도 못했다.

 내가 프로젝터 빔을 사용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이들의 시선을 아래가 아닌 앞을 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적인 종이 교재보다 동적인 매체는 집중력을 높여주며 내용 전달의 과정에 유리하다. 물론 짜임새 있는 교재와 판서의 중요성을 모르는바는 아니다. 그날의 학습 목표와 최소한의 교육 내용을 PPT의 흐름으로 가져갈수만 있어도 훨씬 수월한 수업이 전개 될 수 있다. 권투 시합의 라운드걸이라고나 할까. 또 하나는 지금의 아이들의 정보량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높다. 많은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고 수많은 대중 매체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수시로 개정되며 이전보다 다양한 자료가 실린 교과서라 할지라도 아이들에겐 진부하기 쉽상이다. 다양한 언어활동과 맥락을 제시하여야 하는 국어교과에서 교수자가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할 수 능력은 아이들의 흥미와 참여도를 높여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의 장점은 부각하고 단점은 보완하기 위해서다. 어디서 특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컴퓨터 OA를 사용한 문서와 그래픽 작업은 다른 이들보다 조금 잘 해내는 편이다. 반대로 깔끔하지 못한 판서와 정확하지 못한 목소리는 여전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 장점과 단점을 어느 정도 살리고 죽여주는 것이 바로 매체이다.

 아이들은 학원처럼 시간이 되어 하나둘 들어왔고 나는 그 아이들에게 눈을 한번씩 마주치며 어색하지 않을 인사를 건냈다. 중학교 2학년이 되는 1학년 아이들은 언제봐도 참 조그맣고 어리다. 그런 아이들이 3학년만 되면 나보다 큰 덩치들이 되니 참 매번 신기하다. 나의 이름을 말하고 또 이름들을 물어봤다. 이제 당분간 수없이 이름들을 되물으며 또 미안해하겠지. 학교에선 먼저 이름 외우기가 가장 신경쓰이는 부분이다. '너' 또는 '번호' 따위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대화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 믿는다. 다행히 열두명. 금방 외울 수 있겠다.

 애초에 정한 교재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방과후부나 담임 선생님을 통해 교재와 수업 선생님 정도는 미리 이야기 들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첫 시간은 복사물이나 학습지로 해달라는 담당 선생님의 말이 있었기에 수업에는 지장이 없었다. 게으른덕에 밤늦게까지 만든 학습지를 하나하나 투명파일에 껴 나눠주었다. 첫시간 중학교 1학년의 아이들에게 '국어는 왜 배울까?', '국어는 어떻게 배울까?', '국어는 무엇을 배울까?'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고, 그 질문을 학습지로 옮겼다.

 국어는 왜 배울까? "교과목이니까. 중요하니까. 우리나라 말이니까. 소통하기 위해서"와 같은 뻔하지만 만족스런 대답들이 나왔다. 사실 국어 뿐만이 아니라 시간표의 모든 교과들을 왜 배우는지 설명할 수 있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물론 여기선 '설명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국어교과의 언어활동이 된다. 어렵지 않게 개인의 성장, 범교과적 지식, 도구적 교과, 문화 창달과 같은 설명을 하려고 했다. 역시나 받아 적는다. 잘 들어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받아 적고 밑줄만 긋는 아이들의 태도는 분명 우리들의 잘못이다. 능숙한 말재주는 지식이 안정적으로 축척되었을 때 가능한 것임을 새삼 느낀다. 쉽게 넘기는 개론서의 문장 하나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누군가를 직접 가르치다보면 알게 되더라.

 국어는 어떻게 배울까? 아이들과 '대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 너와 내가 대화하고, 친구들과 대화하고, 마찬가지로 작자와 등장인물과 글쓴이와 대화한다. 모든 언어활동은 대화에서 시작하고 이해를 필요로 한다. 의사소통이라는 말은 쉽게 꺼내지만 정작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쓰는데 인색하다. 그와함께 다른 이의 생각을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서툴다. 나도 모르게 "그러니까 학교폭력이 생기잖아"라고 툭 뱉어버렸다. 그리고 국어는 무엇을 배울까? 학교의 교과서로 내신 대비를 해주지 않을 것이 내심 미안했던지 2학년 1학기 교과서의 차례를 학습지에 담아 설명해 주었다. 듣고 말하고 또 읽고 쓰며 대화하자. 더 잘 대화하기 위해서 문법도 배워보자. 문학 속의 사람들과도 대화해보자. 결국 이 대화(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문법, 묵학) 속에 교과서의 모든 단원들을 설명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까 대화하자. 나와 대화하자. 그래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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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달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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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찬 정보 좋네요~

    2016.06.18 19:17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