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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니/유리창 (시선/생각)

눈물이 부끄러웠던 그 해의 기억, 열사와 김진숙


2003년 그 해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노동탄압'과 '노동유연화'에 맞서다 분신하고 투신하였다. 또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이 그리고 학생들이 현장에서 거리에서 피를 흘리고 잡혀갔다. 그 거리에서 그 땀내와 그 핏자국 속에서 나는 두산중공업 배달호, 화물연대 박상준, 세원테크 이현중, 농민 이경해, 한진중공업 김주익, 세원테크 이해남, 근로복지공단 이용석, 한진중공업 노동자 곽재규의 이름을 기억한다.

그 해 종묘공원, 이용석 열사는 나의 등뒤에서 몸에 불을 질렀다. 그가 죽기 직전 내뱉은 말 '근로기준법', 그리고 사람이 불에 타죽는 모든 것을 무기력하게 기억해야만 했다. 그 해 겨울 유난히도 칼바람이 불었던 영등포 복지공단의 언덕과 부산 한진중공업의 도크를 단지 견뎌내고 있었고, 그러다 나는 노동자대회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처음 만났다.

단지 견딜 수밖에 없었던 그 해 2003년은 나에게 대못과 같은 해이고, 그 대못은 서른이 된 지금도 녹슬지 않은채 불현듯 아픔을 주곤 한다. 그리고 참 많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그 대못은 여전히 그 자리 그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2003년 노동자가 투신하였던 그 곳 그 자리에 같지만 또 다른 노동자가 올랐고, 2003년 노동자가 분신하며 외첬던 그 말 그대로가 같지만 또다르게 노동자의 목을 맨다.

 

(전국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파업노동자를 응워하러 왔다.)




2003년 노동자대회, 김진숙 지도위원의 추도사







(아래는 추도사 전문 #1)

작년 한진중에서 밀려난 아저씨를 우연히 길에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30년 일해 온 일터에서 명퇴란 이름으로 강제로 밀려난 아저씨는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박창수 위원장 이야기를 하며, 아무 것도 잘못한 게 없는 아저씨가 자꾸 미안하다며 울었습니다.
50이 넘은 사내가 10년도 더 지난 일로 술잔에 눈물 콧물을 빠뜨리는 걸 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박창수란 이름은 세월의 무게로도 덮을 수 없는 아픔이구나 생각했습니다. 박창수 하나만으로도 우린 아프고 무겁습니다.

두번쨉니다. 대한조선공사를 한진중공업이 인수한 이후 여섯 명의 위원장 중 두 명은 구속 이후에 해고되고, 한 명은 고성으로, 율도로 하루가 멀다 하고 쫓겨다니고, 두 명은 죽었습니다.
지난 번 위원장 선거가 끝나고 어떤 아저씨가 그러셨습니다. "내는 김주익이 안 찍었다. 똑똑하고 아까운 사람들, 위원장 뽑아놓으면 다 짤리고 깜빵가고 죽어삐는데,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김주익이를 우째 또 사지로 몰아넣겠노?"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우리가 뭘 그렇게 죽을죄를 졌습니까?
조양호 회장님, 조남호 부회장님, 언제까지 하실 겁니까? 이 소름끼치는 살인게임이 앞으로 몇 판이 더 남았습니까?
LNG선상 파업으로 김주익 지회장이 구속됐을 때 인권변호사의 이름을 팔아 그를 변호했던 노무현 대통령 각하!
노동자의 가련한 처지를 팔아 따낸 권력의 맛이 그렇게 달콤합디까? 조중동 그 찌라시들의 꼬봉노릇이 그렇게 안락하더이까?

대기업 노조가 나라를 망친다했습니까? 21년된 노동자의 기본급 105만원, 세금떼면 80만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늙은 노동자들이 88일을 애원을 해도 청와대, 노동부, 국회의원 어느 놈 하나 코빼기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동지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 하지 말걸 그랬습니다.
교도소 짬밥보다 못한 냄새나는 깡보리밥에 쥐똥이 섞여 나오던 도시락 그냥 물 말아서 먹고, 불똥 맞아 타들어간 작업복 테이프 덕지덕지 넝마처럼 기워입고, 체감온도 영하 30도 한 겨울에도 고양이 세수해가며, 쥐새끼가 버글거리던 생활관에서 쥐새끼들처럼 뒹굴며 그냥 살걸 그랬습니다. 변소에 우글거리던 구데기들처럼 그냥 그렇게 살 걸 그랬습니다. 한여름 감전사고로 혈관이 다 터져 죽어도, 비 오는 날 족장에서 미끄러져서 라면발 같은 뇌수가 산산이 흩어져 죽어도, 바다에 빠져 퉁퉁 불어 죽어도, 인명은 재천이라던데 그냥 못 본 척 못 들은 척 그렇게 살걸 그랬나 봅니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도, 내일에 대한 희망도, 새끼들에 대한 미래 따위 같은 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며, 조선소 짬밥 20년에 100만원을 받아도, '회장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게 감지덕지 살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 같은 사람들이, 억만금 같은 사람들이 되돌아 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만 있다면, OO이 OO이에게, OO이, OO이, OO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광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책봉 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재계순위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부자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회장님이 재계순위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억씩 빼돌리고, 사교육비로 한 달 수천만원을 써도 재산이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는 한 달 100만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오는데, 2년치 임금 7만5,000원을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 올라간 그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커녕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원 주던 노동자 짤라내면 70만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 백명이 달라들어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의 품으로 돌아오는데 그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명의 노동자가 골반압착으로, 두부협착으로 죽어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도시 대구, 전자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의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들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50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이 끼치게 무섭습니다.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 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을 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을 하던 김주익의 죽음의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업종을 넘어, 국경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린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이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 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음으로 깨지는 겁니다. 맨날 우리만 죽고 천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을 하고 몸부림을 쳐도 저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이 피가 거꾸로 솟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돌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놓고 아빠를 기다린 OO이. 아빠 얼굴을 그려보며 일자리 구해줄 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OO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여러분!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래는 추도사 전문 #2)

인간으로 태어나 노예로 살던 자의 부끄러움. 그걸 깨우쳐준 전태일.
그분을 열사라고 부르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 분의 죽음에 책임질 일이 없었고,
자책할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함께 했던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냥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때때로 흐트러지지 않겠다는 다짐들을 담아 떠올릴 수 있는 바위 같고 산 같은 이름이었습니다.

박창수와 11년,
김주익과 19년,
재규 형님과 15년.
군사독재에 치를 떨며 숨죽여 오르내리던 용두산 공원이 있고,
민주노조 세워보자고 새우깡 안주를 놓고 밤을 새우던 다대포 바다가 있습니다.
밤새 등사기로 밀어낸 유인물을 테이프로 감은 채 정문을 통과해야 했던 안전화가 있고 화이바가 있습니다.
번갈아 가며 면회를 오고가던 감방이 있고,
한진노조 때문에 세배로 늘려야 했던 영도경찰서가 있습니다.
시장 아주머니들이 싸다준 김밥을 최루가스에 비벼먹던 6월 항쟁의 거리가 있고,
멸공의 횃불아래를 부르며 침묵의 공장을 해방의 광장으로 만들어가던 대투쟁이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착하다는 이유로, 너무 말이 없어 깝깝하다는 이유로
이리저리 재단하며 때때로 미워하기도 했던 애증의 세월들이 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주익 씨가 자랑스럽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그 큰손을 붙잡고 하고 싶은 얘기가 참 많았는데 이제 어디에다 그 얘기들을 다 해야 합니까?
85호 크레인의 달력은 129일의 시작 6월11일에 동그라미가 쳐진 채 멈춰지고,
그 칠흑 같은 밤으로부터 비는 참 그악스럽게도 내렸습니다.
비가 몹시 내리던 어느 늦은 밤,

'011-554-1469' 이제 다시는 받을 일도, 걸 일도 없는 전화번호 하나.

- 저녁은 먹었어요?
- 예….
- 비가 많이 와서 어떡해요?
- 비야 맨 날 오는데요 뭐….

전 그때까지만 해도 용건이 궁금할 따름이었습니다.
용건이 없는 전화는 겉도는 얘기가 몇 마디 더 이어지다 그럼 수고하시라는 잔인한 인사를 그에게 남긴 채 끊어졌습니다.

그 때는 몰랐습니다. 그 황소 같은 사람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 곰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막막했을까
단 한 발짝도 내려설 수 없는, 땅보다는 하늘이 가까운 그 꼭대기가 얼마나 아득했을까. 얼마나 내려오고 싶었을까.
봉다리에 매달아 크레인까지 밥을 끌어올리던 그 밧줄에 목을 걸어야 했던
그 처절한 절망을 이제야 헤아리는 이딴 게 무슨 동지입니까.
죽을 각오로 올라갔으나 그는 살고 싶었던 겁니다.
9월9일 유서 한 통을 써놓고 기다리고,
10월14일 또 한 통을 서놓고 목이 메이게 간절하게 기다려보고.
단식도 해보고,
삭발도 해보고,
수 십 번 집회도 해보고,
태풍도 혼자 견디고,
추석도 혼자 견디고,
아버지 제사도 혼자 견디고,
이제 더는 올라갈 곳도 없는데,
이제는 정말 아무것도 해볼 것도 없었던 그 처절했을 절망들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져 견딜 수가 없습니다.
백만 번을 생각하고 천만 번을 생각해도 아까워서, 사무치게 아까워서 미치겠습니다.

다른 애들 다 가진 힐리스 한 켤레 사들고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애비.
아빠 얼굴을 몇 개나 그려놓고 일자리 구해줄 테니 돌아오라고 했던 10살짜리 딸내미보다,백만 배 천만 배 더 그 딸내미를 어루만지고 안아보고 싶었을 애비.129일의 아빠의 부재로도 눈에 띄게 기가 죽었다는 일곱 살 막내가
이제는 영영 아빠 없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어떤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을 애비가,
그 아이들을 그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기어이 상주로 만드는 세상.
10월17일 그 날 이후 크레인과 눈이 마주칠까봐 하늘을 올려다 볼 수조차 없는 아저씨들.

'너나 없이 '미안합니다.'
'내가 죄인입니다.'

정작 미안한 건 우리가 아닌데도 그 한마디가 인사가 돼버린 고통의 시간들.
재규 형님도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때 "형님이 뭔 죄가 있습니까"
그 한마디를 못한 게 또 이렇게 남습니다.
재규 형님은 그렇게 라도 지회장을 따라가서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들은 유서가 없으니 단순 추락사랍니다.
김주익 지회장이 빤히 내려다보는 4도크에 피로 써내려 간 유서.
얼마나 더 처절한 유서가 있어야 합니까?
바로 그 4도크에 매어있던 배를 새벽에 잠수부까지 동원해서 빼내가고,
배가 출렁이던 자리엔 조합원들의 한숨과 패배감이 넘실거리고,
그 넓은 도크바닥을 종이 삼아 몸 뚱아리를 붓 삼아 써내려 간 얼마나 더 처절한 유서가 필요합니까?
안기부와 한진자본이 죽인 박창수 위원장은 유서가 없어 13년 동안 의문사입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그랬답니다.
지금과 같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들의 분신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되며,
자살로 인해 목적이 달성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무현, 문재인, 그들은 민주화 됐습니다.
도둑놈도 살인마도 그들이 집권하는 순간 민주화가 완성되는 거 한 두번 봤습니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누가 지 입으로 내 독재자요 합디까.
누가 내가 도둑놈이요 내가 살인마요 합디까.
도둑놈도 정의사회 구현이요,
도둑놈의 애비들도 위대한 문민의 정부요, 국민의 정부였습니다.

수능시험이 끝났으니 이제 아이들 차례입니다.
집이 강남도 아니고,
수백만원짜리 과외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노동자의 아이들이 어차피 실업자 아니면
비정규직으로나 살아가게 될 아이들이 차례차례 옥상에서 뛰어내릴 차롑니다.
영등포 경찰서장 짝 날까봐 내놓고 말은 못해도,
아이들의 잇따른 죽음엔 전교조의 기획의도가 엿보인다고 말하고 싶어 근질근질한 입들이 한둘이 아닐겁니다.
강남의 집 값이 1주일에 7억이 오르고, 야당이 한 자본에게서만 100억을 받고,
철도에서, 부안에서, 전교조에서 정부가 했던 약속들이 손바닥처럼 뒤집어지고,
어느 것 하나 정상인 게 없고 어느 구석 하나 상식이 통하는 게 없는데도
용케도 정권이 유지되는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행태가 되풀이되는 유일한 힘.
경상도에선 자본가도 1번 노동자도 2번, 전라도에선 자본가도 2번 농민도 2번.

이 희한한 연대가 유지되는 한 아무리 피터지 게 싸워도 세상은 안바뀝니다.
노동자가 죽고, 농민이 죽고, 노점상이 죽고, 장애인이 죽고, 아이들이 죽어도,
그때마다 다시는 울지 말자 수백 번을 맹세해도, 죽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죽었으면, 그 아까운 생목숨들을 그만큼 바쳤으면
영남대승론, 호남필승론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필승론이 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제발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자금을 쌓아놓기 위해 빌라 한 채가 통째로 금고가 되는 시대에, 한푼 두푼 모았던 돼지저금통이 아직도 감개무량하십니까?자본가에게서 나온 검은 돈으로 정권을 사는 대통령이 노동자 편이기를 바라셨습니까?
조중동의 입이 곧 정권의 이데올로기가 되는 체제에서 민주주의를 갈망하셨습니까?
효리에게 알몸을 보여달라는 스포츠신문들을 돈 내고 사보면서 세상이 바뀌길 바라셨습니까?
삼성해복투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싸워도 라이온스를 응원하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울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줄줄이 개죽음을 당해도 현대 호랑이 축구단이 이기는 날
축배를 드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는 저들의 손바닥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조남호만 나쁜 놈입니까?
김문기만 죽일 놈입니까?
착한 자본가는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는 단 하루도 살아보지 않은 자들만이,
남의 눈에서 쏟아지는 피눈물을 달게 마시는 자만이 자본가가 될 수 있고,
그게 자본주의입니다.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게 애국이 아니라 효순이 미선이를 위해,
핵폐기장 반대,
파병반대를 위해 촛불을 밝혀드는 게 애국이요,
대∼한민국을 외치는 게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게 계급적 단결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생산해낸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영남·호남의 연대가 아니라 농민·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노점상,
그들과의 연대가 진정한 연대입니다.
철도 동지들, 화물연대 동지들, 쓰라린 만큼만 다시 일어섭시다.
한진중공업 동지들, 세원테크 동지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동지들.
우리가 흘린 이 피눈물만큼만, 꼭 그만큼만 다시 갚아 줍시다.

전국에서 오신 수많은 동지들.
그리고 하도 오래 싸워서 이제는 아무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또다시 맨몸으로 이 시린 겨울을 맞설 장기투쟁 사업장 동지들.
작은 노조라서 신문에 한 줄 안나고, 집회 한번 뽄때나게 안되던 수많은 투쟁사업장 동지들.
돈 없고 권력 없는 노동자들이 몸뚱이로 써내려 왔던 피눈물의 역사.
목숨으로 노동해방 횃불을 밝혀왔던 노동자들의 처절한 역사.
그 역사의 승리를 위해 이제는 검은 머리띠말고 노동해방의 붉은 머리띠를 다시 맵시다.

숨쉬는 것조차 죄스럽고,
지금은 죽을 만큼 힘들어도
기필코 살아서 단결 투쟁 노동해방으로 총진군합시다.




어느때보다 희한한 연대가 이루어지고, 어느때보다 노동자의 이름을 앞세운 자가 노동자를 팔아먹는 이 때에
그래, 철도 동지들, 화물연대 동지들, 한진중공업 동지들, 세원테크 동지들,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동지들.
농민·여성·이주노동자·장애인·노점상들의 연대
우리가 흘린 피눈물만큼만, 꼭 그만큼만 다시 갚아 줄 수 있는 연대
쓰라린 만큼만 다시 일어나 서로의 아픔을 확인할 수 있는 연대
기필코 단결 투쟁 노동해방으로 총진군으로 하는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