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였습니까?

 

자냐? 자냐?

 

당 안팎에서 진보대통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통합’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진보신당을 향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통합’의 반대말을 ‘분열 혹은 분당’이라고 한다면, ‘진보의 통합’이라는 자못 성스러운 초석을 깨고 ‘분열 혹은 분당’을 주도한 ‘가해자’로서 진보신당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으론 여전히 진보신당을 ‘피해자’로 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종북’과 ‘패권’이 가해자임을 항변합니다.

그러나 저는 분당의 내막을 잘 모릅니다. 당시 저는 이해관계자가 아니였으니까요. 다만 분당 당시 다양한 입장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진보신당에 입당하게 되었고, 따라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사건이 오히려 저에게는 선택을 가능하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영역의 '분열'이 오히려 저에게는 '통합'이 되어준 꼴입니다. 무엇을 '배제'한다는 것은 동시에 무엇은 '선택'한다는 것과 동의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그러한 제게 어느 순간부터 獨자이거나, 通자이기를 강요합니다. “홀로 남아 말라 죽을 거냐, 사회운동이나 할 거냐”라는 말을 합니다. 배제되었던 그 무엇과 다시 합쳐 “새 진보정당을 건설하여 진보대통합을 이루자”라고 합니다. 묻고 싶습니다. ‘분열 혹은 분당’과 ‘종북 혹은 패권’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 여러분, 3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진보신당은 通하였습니까?

 

진보신당, 통하였습니까?

 

최근의 민주노동당 시의원 사건을 보았습니다. 처음 본 것은 ‘탈당’이라는 수단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라는 한 진보정당의 모습이었고, 다음에 본 것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민노당스럽다, 한나라당스럽다’며 구별 짓기에 바쁜 진보신당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정희 대표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라며 고개를 숙였지만, 그 일어난 일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잘못된 ‘시의원’ 한 명과 잘못 뽑은 ‘선거구조’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사람’이 탈당함과 동시에 ‘추상적인 구조’는 책임을 미룰 수 있었습니다. 힘없는 아이를 때린 자기 자식이 지금은 가출을 했다고 나 몰라라 합니다. 이제 그런 아이 낳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합니다. 노회찬 전대표가 “미안합니다”라는 말로 진보의 연대의식을 표현했지만 그 문제를 방기한 것은 삼촌이거나 옆집 아저씨로서 똑같습니다. 선거철에 당게시판을 어지럽게 채우던 선거구조 논쟁과 몇몇 지역에서 발생하였던 언성 높았던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민주노동당 시의원이 우리보다 먼저 CCTV 촬영에 협조해 주신 덕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결국 그 시의원의 징계는 부결되었습니다. 바로 ‘우리는 가족’이라고 끊임없이 손 내미는 민주당에 의해 말이죠.

 

당원을 떨이하려는 통 큰 정당

 

도대체가 '한국 좌파운동사'를 꿰뚫을만한 운동 경험을 갖고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정당 활동에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정치 지형과 문제’에 해박한 지식도 갖고 있지 못한 저로서는, 문장을 메꿔나갈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고역 이였습니다. 오바스럽게 좌파운동사와 정치지형을 거론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당의 분당을 알기 위해서는 ‘종북주의’와 ‘패권주의’에서 비롯된 과거 한국의 좌파운동사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보대통합이라는 거창한 숙원사업을 판단하기 위해선 적어도 ‘국민참여당’이 ‘민주당’이 ‘노무현’이 어떻게 다른지 한국의 정치지형 정도는 알아야 했습니다. 이런 것을 모르면 이 논쟁 아닌 논쟁에 참여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당 안에서 당 전망에 대한 소통 방법은 시당 선거와 맞물려 독자니 통합이니 편 가르기로 그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당면한 선거를 통해 후보의 입장을 지지하지 못하면 그 속에서 ‘아는 사람’이 되지 못하면, ‘모르는 사람’인 우리는 그저 당원 대다수가 통합을 원한다는 숫자놀음이나 전국의원 회의에서 독자가 승리했다는 제목놀음에 그쳤습니다. 저에게는(혹은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았던 판단을, 쉽게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모습이 결국 ‘운동권 정당’의 이미지를 벗자라고 하는 당에서 소통하는 방식입니다. 통 큰 치킨에 이어 우리도 ‘통 큰 정당’을 만들자고 하는데 ‘통 큰 정당’은 보다 저렴한 정당 입니까? 혹시 무엇인가를 ‘배제’하였던 분당 때, ‘북한을 대하는 태도’와 ‘패권적 구조’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력과 연대’의 문제들은 모두 해결되었습니까? 흡사 통 크게를 외치는 우리는 주변에서 여전히 진보적 가치를 지키려는 작은 목소리들을 문 닫게 하려는 기업형슈퍼마켓(SSM)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누가 ‘문건’식의 고급스러운 전략 방안 말고 ‘원숭이도 이해하는 통 큰 정당’에 대해 설명 좀 해주세요. 그래야 나 같은 돈 없는 당원들이 떨이로 다른 당에 팔려가는 꼴을 피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Posted by 달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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