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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니/유리창 (시선/생각)

정권만 바꾸지 말고, 이제 세상도 바꾸자.

  늦잠자는 아침 동네를 누비는 유세차가 나를 깨우는 선거철이다. 내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는 '빈 칸'만 해도 8칸이나 되는 6월 2일, 시장, 구청장, 교육감, 교육의원, 시의원, 구의원 그리고 비례대표까지, 살펴봐야 할 인물들만해도 어림잡아 30명은 훌쩍 넘는 까탈스런 민주주의다. 민(民)이 주(主) 되는 민주주의 사회와 민(民)이 소외되는 자본주의 사회를 동시에 사느라 고단한 백성들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라는 관문 앞에서 30명의 인물을 찾아보기란 수많은 유세차량의 번호판을 외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대표가 우리를 대변해주길 바라는 한가닥 희망의 의회주의를 버릴만한 용기가 없다. 우리를 대표하는 '그'들이 어떻든간에 생활에서 구현되는 정책과 제도는 분명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고 있는 건물에 '재개발'과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인간보다 이윤이 중시되는 자본과 기업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겠지만, 이러한 사업에 악수를 하고 기념촬영을 하는 인간들은 구청건물과 국회 그리고 청와대에 들어앉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법률과 제도의 틀은 여전히 국회안에서 '다수'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다수를 지배하며 더욱 견고해지며 평생 살던 우리집이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기 위해 쫒겨나게 될 때 나는 '테러범'이 되기도 하며, 50여명에 가까운 우리 이웃들이 차가운 바다에 수몰되는 아픔을 느껴 명확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면 나는 '빨갱이'가 되기도 한다. 광장은 봉쇄되고 인터넷은 삭제당하며 교사와 공무원은 해직당한다. 그 한가운데 그들이 만들어 놓은 '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뿐만이 아니다. 노동의 귀천을 떠나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사는지가 중요한 시대는 이미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수많은 도급과 하청, 계약직, 아르바이트로 나뉘어 취업했다하면 '정규직이야?'라고부터 물어오는 '新신분제' 시대로 바뀌었다. '비정규직'이 우리모두가 머무는 기차 칸이라면 '노동의불안정'은 한 방향으로 향하는 레일과 같다. 최근에 수여받은 '88만원 세대'의 호칭은 새로운 탑승자를 환영하는 특별석 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자녀 1인당 대학까지의 양육비가 평균 2억 7천이라는 통계자료(2006년.한국보건사회연구원)와 시도때도없이 보도되는 '집 값' 뉴스만 보더라도 양극화가 심해지는 우리사회에서 우리부모와 친구가 보상받는 노동의 가치와 모습은 우리내 사회 계층과 삶의 질, 다시말해 우리가 향하고 있는 종착역이 어딘지 확실히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기차가 '브랜드'를 떨어트린다는 기관사들은 천박한 '디자인'으로 페인트칠만을 해댈 뿐 어김없이 속력을 높인다. 좀 더 젊은 기관사와 좀 더 부드러운 기관사라고해서 우리의 종착역은 바뀌지 않는다. 기차는 멈추지 않고 쉼없이 달릴 것이다. 이 절망의 운행을 멈춰 버려야 한다. 지금 우리는 기차를 멈 출 기관사를 원해야 한다.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이미 우리의 종착역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게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평생 일구던 밭을 갈아엎었고, 아버지는 일하던 공장에서 구조조정 대량해고자 명단에 올랐다. 어머니는 방관염에 걸리면서까지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1년짜리 계약직을 하고 계시며, 한 학년 1천만원의 학비를 학자금으로 대출받아다니던 내 동생은 학교의 학과가 없어지게 된 부당함을 요구했다가 2천만원 손해배상을 판결받아 법원에 들락거린다. 어린 막내동생은 더이상 사설어린이집을 다닐 수 없을 듯 하지만 국공립 어린이집은 기대도 할 수 없는 처지다. 내 친구는 3교대 근무에 지칠대로 지쳤지만 매일 반복되는 '회사가 어렵다'라는 말과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감, 그리고 비정규직이며 취업준비생인 다른 친구들을 생각하면 힘들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내가 사는 서울엔 왕복 8차선 도로 위 한 가운데 흉물스런 광장이 있고 시내 곳곳의 전경버스들은 차라리 거대한 무대였으면 좋겠다. 이젠 이 괴물같은 도시를 벗어나도 파헤쳐진 산과 강이 곳곳에서 신음하며 수많은 생명들은 소리없이 멸종되고 죽어가는 공사현장이 되었고, 먹는 음식조차 불안해하며 병원비가 겁나 스스로 죽어가야 할 인간들을 생각하자니 돌아오지 않을 철새때처럼 가련하기만 하다.

'이제 우리에게 어떠한 공공재도, 어떠한 자연적 유산도 허락하지 않는다. 교통과 역사를 자본에게 넘겨주고, 강과 산을 개발산업에게 제물로 바치고, 급기야 사람마저도 생산하려 든다. 우리에겐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경제적으로 배제된 모든 이들은 인간사회로부터도 배제되었다.(기본소득 선언中)'




  작은 길엔 시끄러운 선거용 트로트 음악이 소음으로 넘쳐나고, 시장을 누비는 파란 잠바와 노란 잠바가 상인들의 자판 위로 어지럽게 먼지를 날린다. 자, 우리에게 이제 사회권도, 주권도, 생존권도, 그 어떠한 인격도 없다. 새벽 첫차버스가 가득함을 알고 있는 이들이, 열무 한 단과 참외 3개가 얼마인지 알고 있는 이들이 다시 시민들의 사회권과 주권 그리고 생종권을 되찾아오자. 생산라인을 멈춰 본 노동자가, 자신의 농작물을 갈아엎던 농민이, 진리의 상아탑 게시판에 굵은 글씨를 써 본 학생이 그리고 노동과 자유의 가치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이 되풀이되는 정권 더이상 바꾸지 말고 이제 정말 세상을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