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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설레/도시락 (소풍)

마지막 춘천행 무궁화호. 안녕, 경춘선




지금도 여전히 젊은 남녀와 학생들이 커다란 가방과 무거운 장봉투를 들고 들어간다.
청량리역. 지금은 조금 다르게 대형 백화점 대형 마트 대형 쇼핑몰이 화려한 민자역사다.
글쎄다. 화려한 바닥은 항상 차갑고 쓸쓸한 발자국을 품는다.


빨간 무궁화호에 붙은 정겨운 노선판 '청량리↔남춘천'
많은 친구들과 이 열차를 타기 위해 얼마나  많이 뛰었던가.
물론 지금의 무궁화 열차는 5년전 10년전 새마을호의 차량이라 훨씬 깨끗하다.


남한강과 북한강을 끼고 도는 경춘선과 46번 국도
그 사이 지나는 차량이 늘었고, 높은 건물이 늘었고, 등산복 차림의 중년들이 늘었다.


구리 남양주, 퇴계원과 마석을 지나면 한 무데기씩 젊은이들을 뱉어내던
대성리, 청평과 가평 그리고 강촌과 경강역
지금은 그 모든 역사가 거대한 시멘트 요새로 변하는 중이다.
경춘선은 어떤 의미에서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남춘천역에 내렸다. (춘천역은 복선 공사 관계로 몇 년전부터 정차하지 않는다.)
작은 관광안내소에 얼굴을 빼꼼히 내밀고 버스편을 물어본다.
스마트폰을 꾹꾹 눌러보는 것보단 역시 사람에게 묻는 길이 '여행'이다.
박하사탕 한 개와 대형 춘천 지도가 한 손에 들렸다.


버스를 기다렸다. 올들어 가장 춥다는 날
정류장 뒷편 구멍가게에서 따뜻한 캔커피를 사러 들어간다.
만원 지폐밖에 없어서 죄송한터에 할머니가 투덜거리신다.
"만원으로 그거 하나 사는거야? 하나 더 사"
머리를 긁으며 목캔디와 카라멜을 더 집었다. 할머니도 웃고 나도 웃는다.


대학교 2학년때 동아리에서 문학기행을 준비하며 김유정역에 미리 답사를 갔었다.
그때도 춘천에 먼저 들릴 일이 있어서 버스를 탔었는데
몰라보게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도시의 길을 지난다. 낯설다.
시골 시내버스와 보따리 짐들을 발아래 놓아 둔 할머니들만이 그대로다.


저 뒤로 보이는 새로운 김유정역
전통기왓집을 모조한 도시의 기념관같은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다.


경춘선 복선화가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이 역도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시골길과 민박들이 어색하게 짝하고 있는 대성리과 강촌역의 낙서들과
김유정역과 경강역의 작은 지붕은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경춘선이다.
(그러고보니 정작 나는 청평역에서 많이 내린 것 같다.)


무궁화호가 사라지고 새로 바뀔 복선전철이 시험운행 중이다.
음. 어쩌면 나도 곧 저 녀석을 타고 춘천까지 강촌까지 대성리까지 가려나?


경적을 울리며 들어오는 무궁화호
앞 유리의 큰 눈망울이 왠지 슬퍼보인다.


안녕. 춘천행 무궁화호

춘천 가는 기차는 나를 데리고 가네
오월에 내 사랑이 숨쉬는 곳
지금은 눈이 내린 끝없는 철길위에
초라한 내 모습만 이 길을 따라가네
그리운 사람

(김현철- 춘천가는 기차 中)